공감적 독법과 비평적 독법

Madonna des Kanonikus Georg van der Paele Jan van Eyck (1439) (Wikimedia Commons)
텍스트의 장르에 따라서 다양한 독서 전략이 있겠지만, 거칠게 말해서 보편적인 두 가지 전략이 있다 하겠다. 하나는 "공감적" 읽기이며, 다른 하나는 "비평적" 읽기 정도? 공감적 읽기는 말 그대로 저자의 글과 생각에 공감하며 읽는 것이며, 따라서, 독자는 대단히 수용적이며, 언제든 '아멘'으로 화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러한 공감적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독서행위로 부터 제공되는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적으로 읽는 독자는 대체로 텍스트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공감적 독서자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저자의 생각과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사유와 질문"이 개입되지 않는 이러한 독법은 동일한 방식으로 삶과 사회를 읽어냄으로써 다양한 영역에서(정치,문화,경제, 종교....) 말 그대로 "재앙"을 만들어 낸다.
공감적 읽기의 대척점에 비평적 읽기가 있다. 비평적 읽기는 텍스트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서 읽는 독법이 되겠다. 텍스트가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논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얼마나 논리적이며 타당한가? 논거는 충분한가? 그 근거는 적절한가? 약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그 주장은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가? 나의 삶, 혹은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에 어떠한 사회적,경제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가? 등등...적절한 질문은 사유의 성장을 가져오고 더 높은 차원의 지적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공감적 독서가 정보의 양적인 축적을 강화시키는 반면에, 비평적 독서는 정보의 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평적 읽기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문제는 공감능력의 상실이다. 지나친 비평적 힘이 독서행위에 개입하고 자신의 비평능력을 과신하게 되면, 그 능력은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생산적인 힘이 아닌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여 텍스트가 제공하는 모든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게 된다. 공감할 것이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독법을 가지고 또 다른 형태의 텍스트인 삶과 사회를 읽을 때, 차디찬 비판의 칼날아래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될 수 있다.
공감적 독법이 생선 속에 있는 가시를 제거하지 못하고는 생선을 먹는 것이라면, 비평적 독법은 가시를 제거하다 생선 몸통 전체를 잘라내어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공감적 독법의 극단은 "머리"의 결여이고, 비평적 독법의 극단은 "가슴"의 결여다. 양자의 극단은 모두 (컨)텍스트와 건강한 관계 를 맺지 못한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