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세습-내부자론 (음모이론)

(아....할 일이 태산 같은 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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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는 웃음이 나오는 이 희극같은 상황 속에서 더 희극같은 상상을 한 번 해본다.

<세습: 내부자론>

교회와 사회를 고민하며 시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역사의식과  성찰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대를 이어 초대형 명성교회의 담임자가 되는 최악의 수를 둘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세습을 결단했을까?

음모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다시 묻는다. 그는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했을까?

순진해서?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커서? 본인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세습의 구조 혹은 아버지의 기대를 거부할 수 없어서?

아니다. 김하나 목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명민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교회개혁의 열망이 큰 사람일지 모른다. 세습을 거부하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지언정, 명성교회와 그리고 명성교회로 대표되는 한국교회의 문제는 여전히 풀려지지 않을 숙제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들은 빅 픽처를 구상한다.

세습을 수용하여 "내부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전복적 내부자"로 부르고자 한다. 즉, 내부자는 문제의 내부로 들어가 안으로부터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자이다.

당연히 세상사람들은 세습을 통해서 교회를 사유화했다며 분노하고 아들을 조롱한다. 외부의 반발이 강할 수록 내부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지고 내부의 연대의 끈은 더욱 단단히 조여진다. 그렇다, 그는 이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강력한 연대와 결속 속에서,  점차적으로 철저한 신임과 리더쉽을 점차 확보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교인들의 믿음과 리더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혹은 한번에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어떤 계획?

그 계획의 내용을 지금으로선 추측할 수 없다. 다만 큰 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명성교회의 급진적인 개혁을 추친하는 것이다. 이 개혁은 너무나도 급진적이여서, 한국교회의 신앙의 지형과 패러다임을 바뀌는 전환점이 될 만큼  영향력이 있고 쇼킹한 것이다. 결코 내부자가 아니면 생각할 수도, 기획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너무 근거없는 음모론인가?

아니다. 근거는 있다. 나의 음모적 추론은 두 가지 근거로부터 구성된다. 하나는 외적인 근거, 다른 하나는 내적인 근거다.

외적인 근거의 첫번째는 아들의 전공이 현대교회사라는 점이다. 두르(Drew University)라는 하는 신학대학교 가운데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지닌 학교에서,  아들은 교회의 역사를 학습하고 성찰하고 비판하고, 반성하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누구보다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세습을 한다고? 넌센스다.

외적인 근거의 두 번째는 아들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연구자의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검색해 보니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 아들의 학위논문은 미국복음주의 영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잡지인 "Sojourners" 를 다루고 있다. (논문제목: Sojourners Magazine, 1971–2005: Peace and Justice, A Voice of American Progressive Evangelicals”). 논문을 읽지 안고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추측하자면, 아들은 이 잡지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호의적이고 수용적인 관점에서 다룬 것으로 보여진다. 드루의 학문적인 풍토는 Sojourners가 추구하는 방향과 가치와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아들이 그것을 거스리고 반대의 방향으로 논문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논문의 부제는 그러한 나의 추축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부제는 "평화와 정의, 미국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Peace and Justice, A Voice of American Progressive Evangelicals)이다.  "Sojourners" 는  일관된 신학적인 입장을 지향한다. 사회정의, 평등, 개혁,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열린 환대와 연대. 만일 논문의 저자가 논문을 저술하는 몇 년동안 약 35년간의 Sojourners잡지의 내용을 분석하고, 잡지의 발간자인 짐 월리스의 신학을 탐독하고 성찰하며, 이 잡지와 짐 월리스가 35년동안 미국교회의 신학적 지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학자로서 성실하게 연구했다면, 그 역시 신학/신앙적으로 짐 월리스의 신학을 지지하며  그와 동일한/유사한 신학적인 색깔과 양태를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세습을 한다고? 넌센스다.

http://www.drew.edu/theological/2012/07/12/fourteen-gdr-students-awarded-doctoral-degrees/) 

이제 내부자설에 대한 내적인 근거를 살펴보겠다.

내가 내적인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아들의 위임예식에서 아들의 직접 언급한 인사말이다. (인사말에 대한 기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4301)

그의 인사말은 사실상 인사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미 세습을 수용했고, 아버지의 오래된 가운을 입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그는 공식적으로 아버지를 대를 잇는 담임자임이 선포되었다. 인사말은 말 그대로 인사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부자설의 관점에서 인사말을 살펴보면, 그냥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해 보이는 인사말 속에 치밀하고 섬세한 전복적 내부자로의 정체성과 비전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명성교회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이다.....우리가 몇 십만이 모여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명성교회의 주인은 아버지도 아니고, 아들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를 이어 세습을 하는 순간, 그 행위자체가 이미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당연히 아들도 알고 있다. 아들은 뻔한 레토릭처럼 보이는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다"라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인사말의 첫 문장에 넣어서, 지금의 아버지와 내가 교회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훗날 때가 차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교계의 우려를 공감한다. 아까 소리를 지른 분은 세상의 소리이며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할 소리다. 세상의 소리가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우려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그 우려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한다." 

아들은 "세상과 교계의 우려"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하고 심지어 그 우려가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그는 권력과 부에 귀먹고 눈멀지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귀는 열려있고, 눈은 정확하게 떠서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때가 되면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 증명의 내용은 위에서 내가 언급한 그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고 많이 아프지만 우리가 걷기로 한 이 길을 걷되, 다만 우리가 섬이 되어 온 세상 가운데 우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될 마음으로 기꺼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자 이제는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가? 세습을 결정한 순간, 명성교회는 자신만의 왕국이요 섬이되는 것이다. 아들은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인 목표지점은 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교회를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내부자로서 전복할 때, 개혁할 때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아들은 말하고 있는 듯 하지 않은가?

"사회에 연약한 자들과 소외받은 자들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래서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살려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명성교회에 주신 자원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아...어떻게 이보다 더  전복적 내부자의 정체성을 비전을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의 연약한 자들" "소외받는 자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자들" "혼자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는 것. 이것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Sojourners  잡지가 지향하는 방향이고 목표이다. 역시 예측한대로  아들은 잡지의 발행인 짐 윌리스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명성교회가 실현해 낼 것을 용감히 선포한다. 물론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때가 이르면 명성교회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저는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러분이 잘못 골랐다. 정말 잘못한 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와 명성교회를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잘못 골랐다. 정말 잘못 한 거다." 음....아들이 세습에 동의하고 결단한 것이 아니고? 아들이 대이어 세습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아니란다.명성교회 교인들이 골랐단다. 세습은 교인들의 선택이지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본심일 것이다. 아마도 진보적 신학자로서, 개혁적인 목회자로서, 그는 세습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교인들이 원하니까 하는거다.

교인들이 선택을 하기 했지만, 그는 교인들이 선택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는 그는 여러분이 "잘못" 골랐다고 일갈한다. 그는 명성교회를 안정시키고 왕국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전복적인 내부자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한대로 잘못 선택한 것이다.

외적근거와 더불어 내적근거들을 살펴보았다. 너무 아전인수격인 근거 아니냐고? 전복적 내부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냥 겸손하고 평범한 레토릭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음...원래 그런거다. 시선과 관점이 내용을 결정하는 거다. 우리는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깐.

한 가지 더.  내적 증거로 사용된 "인사말"은 사실은 완곡적이고 모호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이에게는 원론적인 표현으로 읽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전복적인 표현적으로 읽힌다. 어떤 이에게는 겸손의 표현으로 읽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겸손이라는 포장아래 진심이 담겨있다고 읽는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는 모호성과 은유, 그리고 완곡어법은 사실 옛날부터 사용된 고수들의 전형적인 레토릭이다. 적들의 비난을 교묘하게 피해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복전 내부자로의 본색을 언제 드려낼 것인가? 그 때가 머지 않은 미래에 오기를 기대해본다. 그 때가 되면 나의 음모론이 단순히 음모론이 아니라 현자의 예언임이 세상에 드러나리라! 그 때가 되면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마시는 날이 도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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